연지암(蓮池庵)은 경주시 외동읍 활성리 378번지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경주 시내에서 울산 방면으로 뻗은 7번 국도를 타고 가면 경주 괘릉이 나온다. 괘릉은 낮은 구릉의 남쪽 소나무 숲에 있는 것으로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괘릉은 『우리 문화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씨가 “한 마디로 경주에 있는 1백55개 고분 중 능묘 정원이 가장 아름답고, 그 능묘 조각은 통일신라 리얼리즘 조각의 진수”라고 해서 더욱 알려진 곳이다. 그리고 무덤 주변의 세워진 석상들 가운데 무인석(武人石)은 신라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서역 사람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여 더욱 유명하다.
이 괘릉 안쪽에는 활성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고, 마을 초입에는 오랜 세월 산이 깎여 언덕이 된 자리에 단아한 모습을 한 연지암이 나그네의 발길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연지암 대웅전에는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96호로 지정이 된 석조 약사여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일제 말엽 이 절의 창건주 김연지화 보살의 꿈에 현몽을 하고 노천에 계신 부처님을 찾아내어 연지암으로 모시고 왔다. 이를 안 일본군이 어디서 훔쳐왔느냐며 연지화 보살을 고문하기 시작했는데, 보살을 고문한 그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약사여래 부처님은 얼마나 영험한지 사업 성취, 학업 성취, 아픈 사람 할 것 없이 누구나 와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약 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데 활성리에는 교회가 하나도 없으며 마을주민 대부분이 불교 신자인 마을이다. 추녀 끝으로 산그늘이 젖어들고 마당에는 간간히 멀리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이 휩쓸고 지나간다. 주지 법진스님이 내주신 따뜻한 차 한 잔의 향기로 긴 여정의 목마름을 달래며 주렁주렁 매달린 탐스런 박과 때 늦게 핀 하얀 박꽃을 어둠 속에서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불교경전을 통한 마음공부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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